금융 시스템은 저축자와 차입자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이 과정에는 다양한 장애 요인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장애 요인은 거래비용과 정보비용이다. 거래비용은 차입자와의 계약을 작성하거나 대안을 비교하는 데 드는 비용을 의미하며, 정보비용은 차입자의 신용도를 평가하고, 그들이 대출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감시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포함한다. 이러한 비용들로 인해 저축자는 낮은 수익률을 얻게 되고, 차입자는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심지어 이러한 비용들이 너무 높으면 대출과 차입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거래비용과 정보비용은 금융 시스템의 효율성을 저해하지만, 이들 비용을 줄이려는 동기가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게 된다.
금융 중개 기관은 이러한 거래비용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소기업과 소액 투자자들은 직접 대출자를 찾기 어려워 금융 중개 기관을 통해 자금을 마련한다. 예를 들어 뮤추얼펀드는 다수의 개인 투자자들에게 지분을 판매하고, 모은 자금을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한다. 이는 소액 투자자도 낮은 거래 비용으로 분산 투자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은행은 투자자들에게 예금증서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들에게 대출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금융 중개를 수행한다. 금융 중개 기관은 규모의 경제를 활용하여 비용을 줄인다. 예를 들어, 100만 달러의 채권을 매수할 때 드는 수수료는 1만 달러의 채권을 매수할 때보다 비례적으로 적다. 따라서 대규모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를 통해 소액 투자자도 이러한 이점을 누릴 수 있다.
금융 중개 기관은 정보 비용을 줄이는 데에도 기여한다. 돈을 빌려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차입자의 재정 건전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차입자가 자신의 재정 상태를 숨기려는 유인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파산이 임박한 기업이 채권을 발행하면서도 투자자들에게는 이 사실을 숨길 수 있다. 이러한 정보 비대칭 문제를 '역선택'이라 하며, 이는 거래의 효율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경제학자 애컬로프는 중고차 시장을 예로 들어 역선택 문제를 설명했다. 중고차의 상태에 대해 판매자가 구매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 구매자는 좋은 차인지 나쁜 차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좋은 차는 시장에서 사라지고, 나쁜 차만 남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역선택 문제는 주식 및 채권 시장에서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우량 기업과 불량 기업이 존재할 때, 기업은 자신이 우량 기업인지 알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이를 구분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은 레몬 기업을 피하려고 우량 기업에 대한 투자를 꺼릴 수 있으며, 우량 기업은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는 특히 중소기업이 주식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데 큰 장애가 된다. 역선택 문제로 인해 주식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 대다수의 기업은 내부 자금에 의존하게 된다. 실제로 미국 기업의 경우 자금 조달의 3분의 2 이상이 내부 자금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채권 시장에서도 역선택 문제는 동일하게 나타난다. 투자자들이 기업의 재무 건전성에 대해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량 기업도 높은 이자율을 지불해야만 자금을 빌릴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반면에, 재정 상태가 불안정한 기업은 더 높은 이자율에도 불구하고 채권 발행을 감수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이자율이 상승하면 더욱 위험한 기업들만 채권을 발행하려고 할 것이며, 역선택 문제는 심화된다.
이자율이 높아질수록 역선택 문제는 더 악화된다. 투자자들은 높은 이자율을 감수하고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이 신용도가 낮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이자율을 올리기보다는 대출의 양을 제한하는 '신용 할당(Credit Rationing)'을 선택할 수 있다. 신용 할당은 일정한 이자율에서 대출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이는 우량 기업도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역선택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1934년 대공황 이후 기업들에 재무제표 공개를 의무화하는 등의 규제를 도입했다. SEC는 기업들이 투자자들에게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고,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를 신속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공시 의무는 역선택 문제를 줄이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여전히 정보 비대칭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한다. 신생 기업의 경우 충분한 정보가 부족할 수 있고, 레몬 기업은 정보를 포장하여 과대평가될 가능성도 있다.
정보 회사들은 이러한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무디스(Moody's)나 S&P와 같은 신용 평가 기관은 기업의 재무 상태를 평가하고,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 제공에도 불구하고 무임승차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정보를 구매하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정보를 공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역선택 문제는 금융 시스템의 효율성을 저하시킬 수 있는 큰 요인이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정보 공개와 규제가 필요하지만, 완벽하게 해결하기는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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