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009년 금융위기 당시 연방정부의 대응을 보면, 위기가 발생할 때 정부가 금융 규제를 새로 도입하는 과정이 잘 나타난다. 위기의 첫 단계는 금융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금자들이 은행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면 ‘뱅크런’이 발생해 은행의 자금 중개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정부가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규제를 도입하는 단계다. 미국 정부는 과거 은행 공황 시기에 예금보험제도를 도입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다. 금융 부문이 불안정해지면 정부는 소비자를 보호하고, 금융기관의 이윤을 적절히 보장하려는 조치를 취한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금융 부문이 새로운 규제에 맞춰 변화와 혁신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예금보험은 예금자의 은행 감시 동기를 낮춰 은행이 위험한 투자를 감행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금융 규제 당국이 금융기관이 새로운 방식으로 규제를 회피하지 못하도록 새로운 규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미국은 1930년대 초 은행 공황이 발생하자 연방준비제도를 설립해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게 했지만, 당시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는 데 실패했다. 이로 인해 FDIC가 설립되었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연준의 주요 정책 기구로 재편되었다. 또 의사결정이 분산된 12개 연준은행이 아닌 워싱턴에 위치한 연준이사회에서 의사결정을 집중적으로 내릴 수 있도록 체계가 바뀌었다.
연방준비제도는 대공황 이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예를 들어, 1970년 펜센트럴 철도가 파산을 신청하고 2억 달러의 기업어음 채무를 이행하지 못했을 때, 연준은 상업은행에 자금을 대출해 기업어음 시장을 정상화시켰다. 1974년에는 프랭클린 내셔널 은행의 양도성 예금증서(CD)를 보유한 예금자들이 대규모로 인출을 시작했는데, 연준은 이 은행이 인수될 때까지 단기 자금을 지원해 뱅크런을 방지했다.
1987년 주식 시장이 급락하자 투자자들은 1929년 대공황이 재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증권 회사들의 파산은 증권 거래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였다. 연준 의장이었던 그린스펀은 은행에 증권사에 대한 대출을 독려했고, 은행과 투자자들은 연준의 유동성 공급 방침 덕분에 안정을 되찾았다. 이를 통해 연준은 금융 시스템의 최종 대부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왔다.
그러나 연준이 모든 은행을 구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연준은 지급불능 상태가 아닌 일시적으로 유동성 문제를 겪는 은행에만 자금을 공급해야 하며, 지급불능 상태의 은행까지 구제하면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게 된다. 특히 1980년대에는 대형 은행들이 연준과 FDIC의 지원을 받는 대마불사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이는 작은 은행들에 대한 불공평과 도덕적 해이 문제를 일으켰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회는 1991년 연방예금보험공사 개선안을 통과시켜 FDIC가 파산 은행을 최소비용으로 처리하도록 했다. 예금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예금자들은 은행 자산 매각으로만 보상을 받게 되었다. 2007~2009년 금융위기 동안 이 개선안의 예외 조항이 특히 중요하게 작용했다.
당시 위기는 상업은행보다 투자은행이 더 큰 타격을 입었고, 정책 당국은 이에 대응해야 했다. 상업은행은 FDIC의 보호를 받지만, 투자은행은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연준은 대형 투자은행에 자금을 지원하고, 기업어음을 매입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재무성은 MMF(머니마켓펀드)에 대한 한시적인 보험을 제공했다.
특히 논란이 되었던 결정 중 하나는 2008년 베어스턴스가 파산하지 않도록 JP모건 체이스에 넘긴 것이다. 연준은 이 과정에서 290억 달러까지 손실을 충당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로 인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고, 이후 연준은 리먼 브라더스를 파산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며칠 후 연준은 AIG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 지분의 80%를 확보하며 국유화했다. 이처럼 연준, FDIC, 재무성은 대형 금융기관의 파산을 막아 '대마불사' 정책을 다시금 시행했다.
이들의 대응 노력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의회는 월스트리트 구제금융이라는 비판 속에서 2010년 ‘월스트리트 개혁과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대형 금융기업을 서서히 해체해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 자산을 매각하도록 유도했다. 이로써 금융 당국은 대형 금융기업을 파산시키거나 구제하는 것 외에 새로운 옵션을 얻었다.
이후, 레귤레이션 Q와 같은 경쟁 제한 규제는 장기적인 은행 안정성을 보장하지 못했다. 레귤레이션 Q는 예금 이자율을 제한했지만, 인플레이션이 이 상한을 넘어서면서 은행 자금이 시장으로 빠져나갔다. 은행들은 이에 대응해 양도성 예금증서(CD)와 같은 새로운 금융 상품을 개발했다. 또한, 이자를 지급하는 NOW 계정과 ATS 계정을 도입해 실질적으로 당좌 예금에도 이자를 지급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결국, 1980년 의회는 예금기관 규제완화법을 통해 레귤레이션 Q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NOW와 ATS 계정을 공식화했다. MMDA와 같은 예금 상품은 FDIC의 보호를 받으면서 지급준비금 보유 의무가 없는 예금으로, 예금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은행이 지급준비금을 보유하지 않아도 되므로 MMDA는 은행의 수익성을 높였고, 금융시장의 경쟁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금융위기는 정부가 규제를 도입하고, 금융기관이 이에 맞춰 변화를 시도하며, 필요에 따라 규제 당국이 새로운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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